역사속에 빛난 인물 > 조만식 장로



조만식 장로 (1883~1950)
1883년 평양의 선비가문에서 출생한 장로이며, 교육가, 수난자, 민족의 지도자였던 고당(古堂) 조만식장로는 산정현 교회가 암울한 역사의 시기에 낳은 민족의 지도자이다.
스물 셋 늦은 나이에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그 당시 신민회 회원이자 민족주의자인 안태국과 도산 안창호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졸업 후 일본에 유학,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남강 이승훈의 요청으로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취임하여, 교감을 거쳐 1915년 교장이 되었다.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려 하였으나 망명 직전에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평양 YMCA 총무란 직함을 갖고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기성운동, 금주금연운동, 국산품애용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벌였다. 1937년 경영난에 봉착했던 조신일보 사장으로 추임하여 민족언론지로 발전시켰고, 일제 말기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한복과 한글 이름을 끝까지 고수하여 신앙과 민족정신을 지켰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중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를 마산에서부터 평양으로 불러올린 인물도 조만식 장로였다.
해방 후 평양의 민주 진영을 규합하여 조선 민주당을 창당, 김일성과 소련군의 공산당과 대항해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1946년 1월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고, 6.25 사변 중 후퇴하던 공산군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만식 장로 약력
1883년 2월 1일
평안남도 강서 출생
1905~1913
- 평양 숭실중학교,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 졸업
-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에 감동함
1915~1919
오산학교 교장 취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1년 복역
1920~1926
-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평양 YMCA 총무
- 김성수, 송진우와 함께 연정회 발기, 민립대학기성회 조직
- 숭인중학교 교장
1905년 4월 10일
신간회 결성
1905년 4월 13일
관서체육회 회장
1932~1943
조선일보사 사장, 신사참배와 지원병제도 협조 거부
1945~1946
- 평남건국준비위원회,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 조선민주당 창당, 반탁운동전개
1905년 5월 3일
한국전쟁 때 피살된 것으로 추정 (2006. 8. 28. 주간조선)